CurriculumST5 조직신학 V: 구원론 › 제2장 은혜의 개시: 소명, 중생, 그리고 선행 은총

강의 2-3: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 논쟁 (1/2)

16 min

구원론의 역사에서 "타락한 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이켜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교회를 양분시키는 가장 격렬한 신학적 분수령이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해 인간의 전 인격이 부패했다는 사실(전적 타락)을 인정하면서도, 그 타락한 상태에서 구원으로 넘어가는 '첫 단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구원론 체계가 형성된다. 이 논쟁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개념이 바로 라틴어로 '그라티아 프라이베니엔스(Gratia Praeveniens)', 즉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 / 앞서 행하시는 은혜)'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인간보다 먼저 은혜로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증언한다(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반응보다 앞선다'는 일반적 정의 자체에는 개혁주의, 알미니안주의, 웨슬리안, 루터교, 로마 가톨릭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그 선행 은총의 '범위(Scope)'가 만인에게 보편적인가, 아니면 택자에게 제한적인가?", 그리고 "그 은총의 '효력(Efficacy)'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거부될 수 있는가(Resistible), 아니면 인간의 완악함을 정복하고야 마는가(Irresistible)?"라는 질문으로 들어가면 각 진영은 첨예하게 갈라진다.

What these 16 minutes give you

  • 선행 은총 논쟁의 핵심 질문(범위의 문제, 효력의 문제)을 정의하고, 교회사 속 4대 이정표(펠라기우스 논쟁, 오랑주 공의회, 도르트 총회, 웨슬리)를 설명할 수 있다.
  • 웨슬리안-알미니안주의의 보편적 선행 은총론의 구조와 신인협동(Synergism)적 메커니즘을 서술할 수 있다.
  • 개혁주의가 제기하는 보편적 선행 은총 개념에 대한 4대 신학적 비판 논증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19

1. 서론: 선행 은총(Gratia Praeveniens)의 개념과 신학적 쟁점의 발단

의 역사에서 "한 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이켜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교회를 양분시키는 가장 격렬한 적 분수령이었다. 아담의 로 인해 인간의 전 이 부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타락한 상태에서 구원으로 넘어가는 '첫 단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구원론 체계가 형성된다.

이 논쟁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개념이 바로 라틴어로 '그라티아 프라이베니엔스(Gratia Praeveniens)', 즉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 / 앞서 행하시는 은혜)'이다.

[ 선행 은총(Gratia Praeveniens)의 어원적 구조 ]
 'Prae' (앞서, 이전에) + 'Venire' (오다, 행하다) ──► Praeveniens (앞서 찾아오는 은혜)
                                      │
  인간의 회개, 믿음, 결단보다 "항상 하나님 편에서 먼저 죄인을 찾아오시는 은혜"

성경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인간보다 먼저 은혜로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증언한다(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반응보다 앞선다'는 일반적 정의 자체에는 , , 웨슬리안, ,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그 선행 은총의 '범위(Scope)'가 만인에게 보편적인가, 아니면 택자에게 제한적인가?", 그리고 "그 은총의 '효력(Efficacy)'이 인간의 자유에 의해 거부될 수 있는가(Resistible), 아니면 인간의 완악함을 정복하고야 마는가(Irresistible)?"라는 질문으로 들어가면 각 진영은 첨예하게 갈라진다.

[ 선행 은총 논쟁의 핵심 질문 2가지 ]
 1. 범위의 문제: 선행 은총은 온 인류에게 무차별적으로 주어지는가 (Universal)?
                아니면 영원한 선택 작정 속의 택자에게만 주어지는가 (Particular)?
 2. 효력의 문제: 선행 은총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거부할 수 있는 가항적 은혜인가 (Synergism)?
                아니면 영혼을 반드시 살려내고야 마는 불가항력적 단독사역인가 (Monergism)?

본 강에서는 역사신학적 흐름(펠라기우스 논쟁부터 알미니우스-도르트 총회, 요한 웨슬리에 이르기까지) 속에서 전개된 선행 은총의 교파별 스펙트럼을 정밀하게 해부하고, 성경적 개혁주의 구원론의 관점에서 이를 엄밀하게 비판·정립한다.

2. 교회사 속 선행 은총 논쟁의 역사적 궤적

선행 은총 개념은 교회사 3대 논쟁(5세기 펠라기우스 논쟁, 16세기 종교개혁과 트리엔트 회, 17세기 도르트 총회)을 거치며 그 형태가 규정되었다.

[ 선행 은총 역사적 논쟁의 4대 이정표 ]
 1.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 vs 펠라기우스 / 반(半)펠라기우스주의
    - 펠라기우스: 원죄 부정, 자유의지만으로 율법 준수 가능 (선행 은총 불필요)
    - 반펠라기우스: 인간이 믿음의 첫걸음을 떼면 하나님이 은혜로 도우심
    - 아우구스티누스: 전적 타락, 주권적 선행 은총만이 의지를 해방함 (단독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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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6세기: 오랑주 공의회 (Council of Orange, 529년)
    - 반펠라기우스 정죄, 선행 은총의 절대적 필요성 선언 (단, 저항 가능성 여지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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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7세기: 개혁주의(도르트 총회) vs 알미니안주의(항론파, 1610/1618-1619)
    - 알미니우스: 모든 인간에게 선행 은총이 주어져 자유의지가 부분 회복됨 (가항적)
    - 도르트 신조: 선행 은총은 일반 은총이 아닌 택자에게 임하는 '유효적 소명과 중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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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8세기: 요한 웨슬리(John Wesley)의 복음주의적 선행 은총론
    - 보편적 선행 은총으로 원죄의 완전 무능력이 상쇄되어 모든 사람이 선택권을 가짐

1)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논쟁

펠라기우스(Pelagius): 아담의 죄는 모범적 악영향일 뿐 인간 본성을 파괴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지(Posse non peccare)를 가졌으므로, 인간을 내적으로 변화시키는 초자연적 선행 은총은 불필요하며 외적인 과 모범(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반(半)(Semi-Pelagianism): 인간이 영적으로 병들었으나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물에 빠진 자가 스스로 손을 내미는 '믿음의 시작(Initium fidei)'은 인간의 몫이며, 하나님은 그 내민 손을 잡아 건져 올리시는 '협력 은혜'를 베푸신다고 보았다.

(Augustine): 인간은 죄로 완전히 죽었으며(Non posse non peccare), 하나님께서 선행 은총(Gratia Praeveniens)을 주사 완악한 의지를 먼저 고쳐주시지 않는 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단 한 뼘도 나아갈 수 없다고 반박했다.

2) 알미니우스(Jacobus Arminius)와 항론파(Remonstrants)의 재구성

야코부스 알미니우스는 펠라기우스주의자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인간의 '전적 타락'을 명목상 수용했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보편 속죄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선행 은총을 보편적으로 부여하셨다'고 주장했다. 이 선행 은총이 원죄의 파괴적 영향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중화시켜, 인간에게 "복음을 믿을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중립 지대"를 회복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3. 웨슬리안-알미니안주의의 보편적 선행 은총론 구조

요한 웨슬리()는 알미니우스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자신의 구원론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으로 '선행 은총'을 배치했다.

[ 웨슬리안-알미니안의 보편적 선행 은총 구원 메커니즘 ]
                    [ 아담의 타락: 전적 부패와 영적 사망 ]
                                      │
                                      ▼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편 속죄)
                    [ 보편적 선행 은총 (Universal Prevenient Grace) ]
                    -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주어짐 (성령의 보편적 사역)
                    - 원죄의 무능력을 치유하고 자유의지를 회복시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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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의지의 긍정적 반응 ]                                [ 자유의지의 부정적 거부 ]
  - 복음 수용, 회개와 믿음 선택                             - 은혜를 거절, 불신앙 유지
  - 결과: 중생 ➔ 칭의 ➔ 성화 ➔ 영화                        - 결과: 영원한 유기 및 멸망
  (구원의 유효화는 인간의 결단에 달림)                      (인간 스스로 멸망을 선택함)

1) 보편적 회복 (Universal Restoration of Free Agency)

웨슬리안 신학에 따르면, 아담의 죄로 모든 인류가 전적 타락 상태에 빠졌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즉각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선행 은총으로 흘러들어갔다.

따라서 지구상에 순수한 의미의 '자연인(은혜가 전혀 없는 타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이미 의 선행 은총을 받아 의 빛과 도덕적 분별력, 그리고 구원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능력(Restored Free Will)'을 공유하고 있다.

2) 가항적 은혜(Resistible Grace)와 신인협동(Synergism)

선행 은총은 인간을 즉각 구원하는 능력이 아니라, "구원의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준비 단계의 은혜"이다.

이 은혜는 절대 인간을 강권하거나 굴복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시므로, 인간이 이 선행 은총에 협력(Cooperation)하여 믿음을 발휘해야만 비로소 로 나아갈 수 있다. 만약 인간이 끝까지 저항하면 선행 은총은 무력화되며 구원은 실패로 돌아간다.

4. 개혁주의(도르트 신조)의 비판과 성경적 논박

개혁주의 신학은 웨슬리안-알미니안주의의 '보편적 선행 은총' 개념을 성경적 근거가 박약한 철학적 가설이자, 인간의 자율성을 구원의 중심에 복원시키려는 세미-펠라기우스주의의 현대적 변종으로 엄중히 비판한다.

[ 개혁주의가 폭로하는 보편적 선행 은총의 신학적 모순 ]
 1. 십자가 공로의 불완전성: 그리스도의 죽음이 실제 구원이 아닌 "구원 가능성"만 열어둠.
 2. 인간 공로주의의 부활: 구원받은 자와 멸망한 자의 궁극적 차이가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됨.
 3. 은혜의 무력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피조물의 변덕스러운 의지에 의해 좌절됨.

개혁주의의 4대 신학적 비판 논증

1) 성경적 근거의 부재 (성경 어디에 '의지를 회복시키는 보편적 선행 은총'이 있는가?)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요한복음 1장 9절("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과 디도서 2장 11절("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을 보편적 선행 은총의 근거로 제시한다.

성경적 반박: 요한복음 1:9의 '비추는 빛'은 을 뜻할 뿐이며, 10-11절은 세상이 그 빛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음을 명시한다. 디도서 2:11의 '모든 사람'은 만인 개개인이 아니라 계급, 성별, 민족을 초월한 '모든 종류의 사람(All kinds of people)'을 뜻하는 적 표현이다. 성경은 성령의 은혜를 '인간의 의지를 중립으로 만들어 시험해 보는 보편적 힘'으로 묘사한 적이 없으며, 언제나 죽은 자를 살려내는 '강력한 재의 권능(겔 36:26, 엡 2:1-5)'으로 묘사한다.

2)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교리의 실질적 무력화

알미니안주의는 입으로는 '전적 타락'을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보편적 선행 은총'이라는 마법의 지우개를 사용하여 타락의 파괴적 결과를 즉시 지워버린다.

만약 모든 인간이 이미 자유의지를 회복하여 하나님을 선택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로마서 3장 10-12절("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이라는 바울의 선언은 허구가 되고 만다.

3) 구원의 최종 결정권(Decisive Factor)이 인간에게 귀속됨

알미니안 모델에서는 동일하게 선행 은총을 받은 두 사람(A와 B) 중 A는 구원받고 B는 멸망할 때, 그 차이를 낳은 결정적 원인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은혜에 협력한 A의 지혜로운 선택"에 있게 된다.

결국 천국에 들어간 A는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러나 저 멸망한 B와 달리 은혜를 거절하지 않고 믿음을 선택한 내 지혜와 결단 덕분이기도 합니다"라며 지를 자랑할 빌미(고전 4:7,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를 갖게 된다.

4) 신적 주권과 은혜의 절대성 훼손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기를 원하셔서 선행 은총을 쏟아부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인간이 이를 거부하여 지옥에 간다면,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인간의 악한 의지 앞에 패배한 '무능하고 무력한 하나님'으로 전락한다.


In short

  • 선행 은총(Gratia Praeveniens)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반응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은혜로 찾아오신다는 성경적 원리이다.
  • 웨슬리안과 알미니안주의는 이를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보편적 은혜'로 규정하여,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회복시켜 구원의 성패를 인간의 최종 결단에 맡기는 신인협동론(Synergism)으로 왜곡하였다.
  • 성경은 중립적인 보편 은혜를 지지하지 않는다. 타락한 인간은 영적으로 완전히 죽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기회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불가항력적 중생(Monergism)으로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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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and discussion

  • 알미니우스와 요한 웨슬리가 주장한 '보편적 선행 은총(Universal Prevenient Grace)' 개념이, 왜 결국 구원의 결정적 원인(Decisive Cause)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자유의지적 선택'으로 귀결시키고 마는지 그 논리적 인과관계를 서술해 보십시오.
  • 알미니안 진영에서 보편적 선행 은총의 성경적 근거로 자주 인용하는 요한복음 1장 9절("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과 디도서 2장 11절("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은혜")의 본문 문맥을 분석하고,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이 구절들을 어떻게 바르게 주해해야 하는지 논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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