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 과정BT101 성경신학개론 › 제1장 성경신학의 정의와 목적

강의 1-4: 성경신학의 목적 (1) — 그리스도를 보게 함

8분

성경신학은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학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목적을 가진 학문이며, 그 첫 번째 목적은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 강의는 그리스도 중심적 읽기의 성경적 근거와 그 실천에서 조심할 점을 다룹니다.

이 8분으로 얻는 것

  •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의 근거를 신약 본문 세 곳 이상에서 제시할 수 있다.
  • 예표(type)와 성취(fulfillment)의 개념을 정의하고 예를 들 수 있다.
  • 그리스도 중심적 읽기의 두 가지 왜곡(알레고리화, 도덕주의)을 식별하고 피할 수 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27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5:39-4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고린도후서 1:20

들어가며: 엠마오 가는 길

하신 주일 오후,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낙심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21). 과거형입니다. 바랐었다. 이제는 아니다.

이들은 성경을 몰랐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유대인이었고,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구약을 읽었고 암송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십자가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기적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손의 못자국을 먼저 보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열어 주셨습니다. "모세와 모든 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것이 성경의 첫 번째 목적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성경은 정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을 만나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성경"이 자기에 관한 것이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구약의 모든 구절이 예수님에 대한 숨겨진 예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레위기의 위생 규례 하나하나에 예수님의 생애가 암호로 숨겨져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식의 읽기는 곧 다룰 "화"의 함정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입니까? 구약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가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며, 그리스도에게서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뜻입니다. 지도의 모든 지점이 목적지인 것은 아니지만, 지도의 모든 길은 목적지를 향해 나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고후 1:20). 구약이 던진 모든 질문과 약속과 기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라는 대답을 얻습니다.

예표와 성취 (Type and Fulfillment)

구약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주요한 방식 중 하나가 입니다.

예표란 구약의 실재하는 인물, 사건, 제도가 하나님의 가운데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미리 그려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두 가지를 강조해야 합니다.

첫째, 예표는 실재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실제로 도살되었고 그 피는 실제로 문설주에 발렸습니다. 이것은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둘째, 예표는 보다 작습니다. 그림자는 실체를 닮았지만 실체가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이를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이 아니므로"(히 10:1).

몇 가지 주요 예표를 보겠습니다.

예표 (구약) 실체 (그리스도) 성경 근거
유월절 어린 양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출 12장 / 요 1:29, 고전 5:7
성막· ,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출 25:8 / 요 2:19-21
영원한 대제사장 레 16장 / 히 4:14-16
놋뱀 들리신 민 21:9 / 요 3:14-15
다윗 왕 다윗의 자손, 영원한 왕 삼하 7장 / 눅 1:32-33
요나의 삼일 죽음과 부활 욘 1:17 / 마 12:40
안식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참 안식 출 20:8-11 / 히 4:9-10

주목할 점: 이 목록의 연결들은 우리가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 자신이 명시적으로 만든 연결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의 기준입니다.

피해야 할 두 가지 왜곡

왜곡 1: 알레고리화 (Allegorizing)

알레고리화란 본문의 역사적·문자적 의미를 무시하고 임의로 영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고전적인 예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여호수아 2장의 라합이 창문에 내건 붉은 줄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고 설교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런 연결을 하지 않습니다. 붉은 줄은 단지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을 식별하기 위한 표지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읽기가 본문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붉은 줄이 보혈이라면, 노아의 방주에 칠한 역청은 무엇입니까? 상상력이 유일한 한계가 되면, 성경은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고 우리가 성경을 다스리게 됩니다.

기준: 신약이 명시적으로 만든 연결, 또는 의 구조 자체가 요구하는 연결만을 따르십시오.

왜곡 2: (Moralism)

정반대의 위험도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이렇게 설교하는 경우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골리앗이 있습니다. 다윗처럼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다섯 개의 물맷돌을 찾으십시오."

이런 설교는 그리스도가 필요 없습니다. 무슬림도, 무자도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문을 거꾸로 읽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윗이 아닙니다. 우리는 골짜기 뒤에서 벌벌 떨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입니다. 다윗은 우리를 대신해 싸우러 나간 왕, 곧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싸우신 왕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신학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줍니다. 본문의 역사성을 존중하면서(알레고리화 방지), 동시에 사의 흐름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합니다(도덕주의 방지).


읽기 방식 본문의 초점 결론 평가
도덕주의 다윗의 용기 "당신도 용기를 내라" 그리스도가 불필요함
알레고리 물맷돌 다섯 개의 의미 임의적 영적 교훈 본문의 통제를 벗어남
성경신학 대표 전사(champion)로서의 왕 "당신을 위해 싸우신 왕을 믿으라" 본문과 구속사에 충실

핵심 요약

  • 성경신학의 첫째 목적은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이다(눅 24:27, 요 5:39, 고후 1:20).
  •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것은 모든 구절이 숨은 예언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 예표는 실재했던 역사적 인물·사건·제도가 그리스도를 미리 그려 보인 것이며, 그림자는 실체보다 작다.
  • 건강한 예표론의 기준은 신약이 명시한 연결과 구속사의 구조가 요구하는 연결이다.
  • 알레고리화는 본문의 통제를 벗어나고, 도덕주의는 그리스도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 성경신학은 이 두 극단에서 우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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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및 토론

  •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가 낙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예수님은 왜 기적이 아니라 성경으로 그들을 회복시키셨는가?
  • 요한복음 5:39-40에서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으나 무엇을 놓쳤는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위험이 있는가?
  • "지도의 모든 지점이 목적지는 아니지만, 모든 길은 목적지를 향해 나 있다"는 비유를 자신의 말로 풀어 보라.
  • 알레고리화와 성경신학적 예표론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별의 기준은?
  • 최근에 들었거나 자신이 전했던 설교 중, 도덕주의적으로 흐른 사례가 있는가? 그것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다시 구성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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