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4-3: 사별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앞선 두 강의가 슬픔을 이해하는 강의였다면, 이 강의는 실제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좋은 의도로 한 말이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강의는 그 흔한 실수들을 구체적으로 짚고, 대신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합니다.
이 9분으로 얻는 것
- 사별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체적으로 안다.
- 그 말들이 왜 상처가 되는지 이해한다.
- 고인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의 의미를 안다.
- 기일과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처소에서 이레 밤낮을 같이 앉았으나 그 고통이 심함을 보았으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욥기 2:13
3.1 성급한 위로가 상처가 되는 이유
서론에서 이미 짚은 원칙을 다시 가져옵니다. 틀리지 않은 말이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적으로 틀리지 않은 말도, 때가 맞지 않거나 설명으로 슬픔을 대체하려 하면 상처가 됩니다.
하지 말 것 ① —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 말은 사별자에게 슬픔을 계속 느끼는 것이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말을 사별자가 아직 슬픔 한가운데 있을 때 들으면 재촉으로 들립니다.
하지 말 것 ② — "이제 그만 슬퍼해"
4-2강에서 이미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 말은 애도에 정해진 기간이 있다는 잘못된 전제를 담고 있고, 사별자를 고립시킵니다.
하지 말 것 ③ — "더 좋은 곳에 갔으니 다행이다"식 성급한 위로
이 말이 신학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말이 필요한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사별자가 지금 필요한 것은 신학적 결론이 아니라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말은 슬픔을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는 시도로 들릴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사별자의 슬픔을 축소시킵니다.
하지 말 것 ④ — 성급한 신학적 설명으로 슬픔을 축소하기
"하나님의 뜻이 있다", "다 계획이 있으시다" 같은 설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말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설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곁을 원하는 사람에게 설명을 앞세우는 것이 문제입니다. 서론에서 다룬 욥의 친구들의 실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3.2 할 것 ① — 고인의 이름을 불러 주기
많은 사람이 사별자 앞에서 고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조심스러워합니다. 혹시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고인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것이 사별자에게는 더 아픕니다. 마치 그 사람이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혹은 이미 잊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가 좋아했던 음식이 뭐였어요?", "○○이 생각 많이 나시죠"처럼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았던 삶을 계속 인정해 주는 일입니다.
3.3 할 것 ② — 그냥 곁에 있어 주기
서론에서 다룬 욥기 2:13이 이 원칙의 근거입니다. 욥의 세 친구는 이레 동안 말없이 곁에 앉아 있었을 때 옳았습니다.
곁에 있어 주는 것은 다음을 포함합니다.
- 굳이 말을 채우려 하지 않기.
- 침묵이 어색해도 견디기.
-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식사, 심부름, 아이 돌봄 등).
- 사별자가 말하고 싶어 하면 듣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 그냥 곁에 있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은 정상입니다. 오히려 완벽한 말을 준비하려는 부담을 내려놓으십시오. 곁에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돌봄입니다.
3.4 할 것 ③ — 기일과 기념일을 기억하고 챙기기
장례식 직후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연락합니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면 대부분의 연락이 끊깁니다. 정작 사별자에게는 그 이후가 더 힘든 시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일, 생일, 결혼기념일, 명절 같은 날들은 사별자에게 슬픔이 다시 크게 밀려오는 날입니다. 이런 날에 짧은 연락 하나가 큰 의미를 갖습니다.
"오늘이 ○○이 기일이라는 거 기억하고 있어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1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큰 돌봄입니다.
3.5 할 것 ④ — 애도가 끝난 것처럼 보여도 계속 물어봐 주기
4-2강에서 다뤘듯 애도에는 정해진 기간이 없습니다. 겉보기에 사별자가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여도, 속에서는 슬픔이 여전히 진행 중일 수 있습니다.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가끔 물어봐 주십시오.
"요즘 ○○이 생각 어떠세요?"
이 질문에 사별자가 "괜찮아요"라고 답하든 눈물을 보이든, 물어봐 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돌봄입니다. 아무도 묻지 않을 때 사별자는 자신의 슬픔이 짐이 된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3.6 정리 — 말보다 행동
이 강의를 하나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좋은 위로는 설명이 아니라 이름을 불러 주고 곁에 있는 것이다.
완벽한 말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서론에서 이미 경고한 것처럼, 완벽한 위로의 말을 준비하려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수강생입니다. 말을 줄이고, 곁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4-1. 사별자를 대할 때 — 하지 말 것 / 할 것
3.1절의 도표를 참조하십시오.
4-2. 시기별 돌봄 우선순위
| 시기 | 흔한 실수 | 권장 행동 |
|---|---|---|
| 장례 직후 | 성급한 신학적 위로 | 실제적 도움(식사, 심부름), 곁에 있기 |
| 1~2개월 | 연락이 급격히 줄어듦 | 짧은 안부 연락 지속하기 |
| 3~6개월 | "이제 괜찮아졌겠지"라고 넘겨짚음 | 여전히 물어봐 주기 |
| 기일·기념일 | 언급을 피함 | 먼저 기억하고 연락하기 |
| 1년 이후 | 애도가 끝났다고 단정함 | 가끔 이름을 불러 주고 안부를 묻기 |
7. 복습 카드
| 앞면 | 뒷면 |
|---|---|
| 하지 말 것 |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제 그만 슬퍼해", 성급한 위로. |
| 할 것 ① | 고인의 이름을 불러 주기. |
| 할 것 ② | 그냥 곁에 있어 주기, 기일과 기념일 챙기기. |
| 계속 물어봐 주기 | 애도가 끝난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서도 계속 물어봐 준다. |
★ 꼭 기억할 한 문장 가장 좋은 위로는 설명이 아니라 고인의 이름을 불러 주고 곁에 있는 것이다.
✓ 이번 주에 할 행동 최근 사별을 겪은 지인에게 고인의 이름을 불러 안부를 물어보기.
핵심 요약
- 하지 말 것: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제 그만 슬퍼해", "더 좋은 곳에 갔으니 다행이다"식 성급한 위로, 성급한 신학적 설명으로 슬픔을 축소하기.
- 이 말들이 틀린 신학은 아닐 수 있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곁이라는 것을 놓친다.
- 할 것 ①: 고인의 이름을 불러 준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 것이 사별자에게는 더 아프다.
- 할 것 ②: 그냥 곁에 있어 준다. 욥기 2:13의 친구들처럼 말없이 곁에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할 때가 많다.
- 할 것 ③: 기일과 기념일을 기억하고 챙긴다. 장례 이후 연락이 끊기는 시기에 이 한마디가 큰 의미를 갖는다.
- 할 것 ④: 애도가 끝난 것처럼 보여도 계속 물어봐 준다. 정해진 기간이 없기 때문이다.
- 가장 좋은 위로는 설명이 아니라 이름을 불러 주고 곁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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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및 토론
- 사별자에게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어색해지거나 실수했다고 느낀 경험이 있습니까?
- 고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상처를 건드릴까 봐 피했던 적이 있습니까?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부담을 내려놓는 것이 왜 어렵습니까?
- 당신 주변에 기일이나 기념일을 앞둔 사별자가 있습니까? 어떻게 챙길 수 있겠습니까?
- "완벽한 위로의 말을 준비하려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는 서론의 경고를 이 강의와 연결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