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5-3: 세상 속의 교회 - 교회와 국가의 관계 및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 (1/2)
제2강에서 우리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감당해야 할 '디아코니아(구제)'와 '문화 명령'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성도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타락한 문화를 변혁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거대한 현실 권력이 있습니다. 바로 '국가(State, 세속 정부)'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동시에,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지는 '지상 국가의 시민'이라는 이중 국적(Dual Citizenship)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가 그의 명저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에서 통찰했듯, 역사 속의 교회는 사랑과 섬김의 원리로 움직이는 '하나님의 도성'과, 힘과 칼의 원리로 움직이는 '지상의 도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 존재합니다. 본 강의에서는 기독교 역사상 끊임없이 충돌해 온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네 가지 신학적 패러다임을 비교 분석하고, 국가의 기원과 한계, 그리고 불의한 권력을 향한 성도의 저항(시민 불복종)에 대해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이 14분으로 얻는 것
-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네 가지 신학적 관점(에라스투스주의, 로마 가톨릭주의, 재세례파, 개혁주의)을 비교할 수 있다.
- 로마서 13장에 근거한 국가의 기원과 목적(일반 은총의 도구)을 설명할 수 있다.
- 국가를 향한 성도의 의무와 교회의 선지자적 비판의 균형을 설명할 수 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태복음 22:21
1. 서론: 두 도성(Two Cities)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제자들
제2강에서 우리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감당해야 할 '디아코니아(구제)'와 ''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성도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한 문화를 변혁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거대한 현실 권력이 있습니다. 바로 '국가(State, 세속 정부)'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의 백성'인 동시에,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지는 '지상 국가의 시민'이라는 이중 국적(Dual Citizenship)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Augustine)가 그의 명저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에서 통찰했듯, 역사 속의 교회는 사랑과 섬김의 원리로 움직이는 '하나님의 도성'과, 힘과 칼의 원리로 움직이는 '지상의 도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 존재합니다.
본 강의에서는 기독교 역사상 끊임없이 충돌해 온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네 가지 적 패러다임을 비교 분석하고, 국가의 기원과 한계, 그리고 불의한 권력을 향한 성도의 저항(시민 불복종)에 대해 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2.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네 가지 신학적 관점
교회라는 영적 기관과 국가라는 세속 기관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해, 역사적으로 네 가지의 거대한 신학적 견해가 충돌해 왔습니다.
① 에라스투스주의 (Erastianism): 국가가 교회를 지배함
16세기 스위스의 신학자 토마스 에라스투스(Thomas Erastus)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견해는, 국가가 교회보다 우위에 있으며 교회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교회가 국가라는 거대한 기구의 한 부서(종교부)로 전락합니다. 역사적으로 영국의 국교회(성공회)나 과거 독일의 국가 교회 시스템이 이 모델을 따랐습니다. 황제나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 되어 주교를 임명하고 교회의 정치와 치리(권징)에 간섭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② 로마 가톨릭주의 (Ultramontanism): 교회가 국가를 지배함
중세 교황청이 강력하게 주장했던 견해로, 교황(교회)이 세속 군주(국가)보다 우월한 권위를 지니며 세속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교황은 태양이고, 황제는 달이다. 달이 태양 빛을 반사하듯 황제는 교황으로부터 권력을 받는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모델은 교회가 세속적 무력(칼)을 휘두르게 함으로써 부패와 십자군 전쟁 같은 끔찍한 오점을 역사에 남겼습니다.
③ 재세례파 (Anabaptists): 급진적 분리주의 (국가를 회피함)
종교개혁 당시 등장한 는 교회와 국가를 극단적으로 분리했습니다. 이들은 지상 국가는 적으로 마귀에게 속한 악한 제도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속 정부의 공직을 맡아서도 안 되고, 군인이 되어 무기를 들어서도 안 되며, 법정에서 맹세나 소송을 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세상 문화와 단절된 채 산속이나 폐쇄적인 공동체(예: 오늘날의 아미시 공동체)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이는 '문화 명령'을 정면으로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④ 개혁주의 (Reformed View): 상호 독립과 영역 주권 (가장 성경적 대안)
(John Calvin)과 (Abraham Kuyper)로 이어지는 개혁주의 신학은 '두 왕국 교리(Two Kingdoms)'와 '(Sphere Sovereignty)'을 통해 가장 성경적인 균형을 제시합니다. 교회와 국가는 둘 다 하나님이 세우신 신적 기관입니다. 그러나 서로의 고유한 영역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국가는 물리적인 '칼'을 가지고 시민의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고, 교회는 영적인 '말씀'을 가지고 을 구원합니다. 국가는 교회의 예배와 교리를 간섭할 수 없고, 교회는 국가의 정치적 실무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기관 모두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래(Under God)' 복종해야 합니다.
| 관점 | 권력의 역학 구조 | 역사적 대표 집단 | 개혁주의의 비판 |
|---|---|---|---|
| 에라스투스주의 | 국가 > 교회 (국가가 우위) | 영국 성공회, 비잔틴 제국 | 교회의 영적 독립성을 훼손함. |
| 로마 가톨릭주의 | 교회 > 국가 (교회가 우위) | 중세 교황청 | 교회가 세속 권력화되어 부패함. |
| 재파 | 교회 ↔ 국가 (완전 단절) | 아미시, 메노나이트 | 세상을 변화시킬 문화 명령을 방기함. |
| 개혁주의 | 교회 = 국가 (동등, 역할 구별) | 교, 개혁교회 | 둘 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독립된 기관. |
3. 국가의 기원과 목적: 일반 은총의 도구
재세례파의 주장처럼 국가는 마귀가 만든 사악한 발명품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세속 정부(국가)의 기원과 목적을 명확히 선언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로마서 13:1, 4)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의 극악한 죄성으로 인해 세상이 완전히 파괴되고 무정부 상태의 지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Common Grace)'의 방편으로 국가라는 제도를 창설하셨습니다.
국가가 가진 권위(심지어 기독교인이 아닌 불신 통치자의 권위까지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국가의 본질적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악의 억제와 질서 유지: 법과 공권력(칼)을 사용하여 범죄자를 처벌하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합니다.
- 공 선(Public Good) 증진: 도로 건설, 빈민 구제, 경제 질서 유지 등을 통해 사회적 샬롬을 유지합니다.
- 교회 보호의 의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은 세속 정부가 "모든 교역자들이 폭력이나 위험 없이 자신의 거룩한 직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합니다. (단, 국가가 특정 교파를 편애하여 다른 교파를 핍박해서는 안 됩니다.)
4. 국가를 향한 성도의 의무와 교회의 선지자적 비판
국가가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라면, 기독교인은 당연히 선량하고 모범적인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 복종과 납세: 성도는 을 따라 법을 준수하고, 국가의 유지에 필요한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해야 합니다(롬 13:6).
- 통치자를 위한 기도: 디모데전서 2장 1-2절의 명령처럼, 통치자들이 공의롭게 다스려 성도들이 평안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할은 단순한 '체제 순응'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국가가 부여받은 권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라는 아래 제한되어 있습니다. 만약 국가 권력이 본연의 목적을 일탈하여 부패하고 가난한 자를 억압할 때, 교회는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세례 요한이 분봉왕 헤롯의 불륜과 악행을 정면으로 꾸짖었듯이, 교회는 권력을 향해 "당신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일 뿐이므로 하나님의 법(공의)에 순종해야 한다"고 외치는 '적 파수꾼(Prophetic Watchman)'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적 중립이라는 핑계로 불의를 눈감아주는 비겁함을 깨고, 기독교인들이 정당한 정치 참여(투표, 정책 입안, 공직 진출)를 통해 공의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5. 시민 불복종 (Civil Disobedience): 복종의 한계는 어디인가?
성경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했지만, 만약 국가가 명백히 '하나님의 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법을 제정하고 강요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성도는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라는 가장 최후적이고 엄숙한 영적 전투에 돌입하게 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행전 5:29)
성경적 시민 불복종이 정당화되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가 예배와 신앙을 금지하거나 우상 숭배를 강요할 때: 바벨론의 왕이 금 신상에 절하라고 명령했을 때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을 각오하고 거부한 것(단 3장),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교회에 신사참배(천황 숭배)를 강요했을 때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믿음의 선진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저항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국가가 명백한 죄(생명 파괴, 부도덕)를 강요할 때: 애굽 왕 바로가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모두 강물에 던져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산파 십브라와 부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기들을 살린 것"(출 1:17)은 성경이 칭찬하는 위대한 시민 불복종입니다.
단, 시민 불복종은 개인의 이기적인 이익이나 단순한 정치적 견해 차이로 행해져서는 안 되며, 오직 에 대한 양심의 속박 때문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그 불복종으로 인해 국가가 내리는 부당한 처벌(감옥, 사형 등)을 폭력으로 엎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감수하며 기꺼이 형벌을 받아들이는 십자가의 방식'으로 저항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부끄럽게 만드는 교회의 진정한 영적 권위입니다.
6. 결론: 긴장 속에서 승리하는 십자가의 길
우리는 대한민국(혹은 자신이 속한 국가)의 여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영원한 본향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20)
역사 속에서 교회와 국가는 때로는 적대적 핍박으로, 때로는 타협적인 유착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습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세속 정부는 점점 더 반기독교적인 법률(가족 제도의 해체, 동성애 합법화, 차별금지법 등)을 제정하며 교회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재세례파처럼 세상을 등지고 도망가서도 안 되며, 가톨릭이나 에라스투스파처럼 세속의 정치 권력을 직접 장악하여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국가의 질서를 존중하며 훌륭한 시민으로 살아감과 동시에, 세상의 불의를 향해 말씀의 검을 빼어 드는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무기는 정치권력이나 다수결의 표심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기는 교회의 무기는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과, 어떠한 핍박 앞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꺾지 않는 '순교자적 제자도'입니다. 이 두 왕국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 이것이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교회의 가장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핵심 요약
-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는 에라스투스주의, 로마 가톨릭주의, 재세례파, 개혁주의라는 네 가지 신학적 패러다임이 있으며, 개혁주의는 두 왕국 교리와 영역 주권을 통해 가장 성경적인 균형을 제시한다.
- 국가는 로마서 13장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일반 은총의 방편으로 세우신 기관이며, 악의 억제, 공공선 증진, 교회 보호의 목적을 지닌다.
- 성도는 국가에 복종하고 통치자를 위해 기도할 의무가 있으나, 교회는 국가 권력이 하나님의 공의를 벗어날 때 선지자적 파수꾼으로서 침묵해서는 안 된다.
- 성경적 시민 불복종은 우상 숭배 강요나 명백한 죄악 강요 상황에서만 정당화되며, 폭력이 아닌 형벌을 감수하는 십자가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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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및 토론
-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세속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여 지배하려 했던 시기(중세 로마 가톨릭)와, 반대로 국가 권력에 교회가 완전히 예속되었던 시기(나치 치하의 독일 국가 교회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교회의 영적 타락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로마서 13장 1-4절을 근거로, 기독교인이 불신자나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정치 지도자가 통치하는 세속 정부의 법률(세금, 교통법규 등)에도 복종해야 하는 신학적(일반 은총적)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