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7-1: 알프레드 N. 화이트헤드와 찰스 하트숀의 과정 철학
제6장에서 다룬 '신 죽음의 신학'은 전통적인 유신론(하늘에 계신 고정불변하고 무감각한 전능한 신)이 현대의 끔찍한 역사적 고통(예: 홀로코스트) 앞에서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전통적인 고전적 유신론(Classical Theism)에서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결코 변하지 않으시며(불변성), 외부의 고통이나 슬픔에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무감정성). 그러나 현대인들은 묻기 시작했습니다. "고통받는 세상을 보며 슬퍼하지도, 변하지도 않는 하나님을 과연 성경의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러한 신학적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20세기 중반, 완전히 새로운 철학적 토대 위에서 하나님을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와 미국의 철학자 찰스 하트숀(Charles Hartshorne, 18972000)이 주창한 '과정 철학(Process Philosophy)'입니다.
이 14분으로 얻는 것
- 화이트헤드가 전통적 '실체(Substance)' 철학을 거부하고 우주를 '과정(Process)'으로 파악한 사고 전환을 설명할 수 있다.
- '현실적 계기'와 '파악'의 개념을 통해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을 설명할 수 있다.
- 화이트헤드가 제시한 하나님의 원초적 본성과 결과적 본성을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 찰스 하트숀의 이중극적 신론과 만유내재신론을 설명하고, 고전적 유신론과의 차이를 대조표로 제시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고통을 이해하는 위대한 동반자(the great companion - the fellow-sufferer who understands)이시다.
A.N. 화이트헤드
제6장에서 다룬 '신 죽음의 '은 전통적인 유(하늘에 계신 고정불변하고 무감각한 전능한 신)이 현대의 끔찍한 역사적 고통(예: 홀로코스트) 앞에서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전통적인 고전적 유신론(Classical Theism)에서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결코 변하지 않으시며(불변성), 외부의 고통이나 슬픔에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무감정성). 그러나 현대인들은 묻기 시작했습니다. "고통받는 세상을 보며 슬퍼하지도, 변하지도 않는 하나님을 과연 성경의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러한 신학적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20세기 중반, 완전히 새로운 철학적 토대 위에서 하나님을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와 미국의 철학자 찰스 하트숀(Charles Hartshorne, 18972000)이 주창한 '과정 철학(Process Philosophy)'입니다. 본 장에서는 우주를 '고정된 '가 아닌 '역동적인 과정'으로 파악한 이들의 철학이 어떻게 하나님의 변화와 고통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토대가 되었는지 탐구합니다.
1.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 '실체(Substance)'에서 '과정(Process)'으로
전통적 서구 철학(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은 우주를 변하지 않는 인 '실체(Substance)'의 결합으로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책상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고 그 책상의 색깔이나 위치가 조금씩 변할 뿐, 근본적인 뼈대는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역시 가장 완벽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최고의 실체(부동의 원동자)'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역학을 연구한 과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화이트헤드는 이 고정된 실체론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우주의 본질을 명사(Noun)가 아닌 동사(Verb), 즉 '과정(Process)'으로 파악했습니다.
1) 현실적 계기 (Actual Occasions / 현실적 존재자)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궁극적인 기본 단위는 변하지 않는 원자나 물질(실체)이 아닙니다. 그것은 찰나에 발생했다가 소멸하며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사건들, 즉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s)'입니다.
우주는 멈춰있는 사진들의 묶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한 편의 교향곡(사건들의 연속)입니다.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되어가는 과정(Becoming)' 속에 있습니다.
2) 파악 (Prehension)과 주체적 목적
그렇다면 우주는 어떻게 연결되며 발전합니까? 화이트헤드는 모든 현실적 계기가 과거의 경험과 정보들을 끌어당겨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작용을 한다고 보았고, 이를 '파악(Prehension)'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제: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새로운 계기)은, 방금 전 문장을 읽었던 기억(과거의 계기)을 '파악'하여 현재의 생각으로 통합해 내는 과정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의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새로운 자신을 해 나갑니다. 우주는 기계적으로 닫힌 시계태엽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하고 유기적인 그물망입니다.
2. 화이트헤드의 신관: 세계와 함께 진화하는 하나님
화이트헤드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공헌은 그가 '하나님'마저도 이 우주적 과정의 예외로 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전통 신학에서 하나님은 우주 밖에 홀로 완전하게 존재하며 세상을 조종하는 독재자였습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하나님은 형이상학적 원리들의 예외가 아니라, 그 원리들의 최고 구현자"라고 선언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하나님이 두 가지 본성을 가지고 우주와 상호작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1) 하나님의 원초적 본성 (Primordial Nature)
이것은 아직 세상에 실현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개념적 본성)'의 창고로서의 하나님입니다. 우주의 각 존재가 매 순간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명령하지 않고 그 존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최선의 가능성(초기 목적, Initial Aim)을 '제공하고 유혹(Persuasion)'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원초적 본성은 세상이 혼돈에 빠지지 않고 조화와 선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영원한 방향타입니다.
2) 하나님의 결과적 본성 (Consequent Nature)
이 부분이 과정 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전환점입니다. 우주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유혹(초기 목적)에 반응하여 각자의 삶 속에서 새로운 일들을 성취(또는 실패)하면, 하나님은 그 피조물들의 모든 경험과 고통, 기쁨을 자신의 내면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십니다(파악).
이것이 하나님의 '결과적 본성(신체적 본성)'입니다. 피조물이 겪는 사건들은 그대로 하나님의 경험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상이 변함에 따라 함께 풍성해지고, 세상이 고통받을 때 함께 고통받으시는 철저히 '함께하시는 분(Fellow Sufferer)'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고통을 이해하는 위대한 동반자(the great companion - the fellow-sufferer who understands)이시다." – A.N. 화이트헤드
3. 찰스 하트숀과 신고전적 유신론 (Neoclassical Theism)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다소 난해하고 수학적인 우주론에 머물렀다면, 그의 제자인 찰스 하트숀(Charles Hartshorne)은 이 철학을 다듬어 전통 신학의 뼈대를 완전히 대체하는 '신고전적 유신론(Neoclassical Theism)'이라는 거대한 신학적 체계로 완성했습니다. 하트숀의 이론은 크게 두 가지 핵심 개념으로 요약됩니다.
1) 이중극적 신론 (Dipolar Theism)
하트숀은 전통 신학(단일극적 신론)이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하나님을 생명 없는 돌덩이처럼 만들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랑의 하나님은 반드시 두 개의 극(Pole), 즉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져야 합니다.
절대적/추상적 극 (Absolute Pole): 하나님의 본성, 도덕적 성품, 사랑하겠다는 는 영원하며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사랑이시라는 사실은 불변(Unchanging)입니다.
상대적/구체적 극 (Relative Pole): 그러나 그 사랑의 대상인 피조물(세상)이 매일매일 변화하고 고통받기 때문에, 피조물의 경험을 수용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식과 감정은 피조물과 함께 변화하고(Changing) 성장합니다.
[비유적 예제] 훌륭한 부모는 자녀를 향한 '사랑의 성품(절대적 극)'에 있어서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아파서 눈물을 흘릴 때, 부모의 마음은 평온한 상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상대적 극). 사랑은 불변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 '경험과 감정'은 대상의 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2) 만유내재신론 (Panentheism)
하트숀은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유내재신론(Panentheism)'이라는 개념을 체계화했습니다. 이는 (Pantheism)이나 전통적 유신론(Theism)과는 다릅니다.
전통적 유신론 (Theism): 하나님은 세상 밖(초월)에 분리되어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범신론 (Pantheism): 우주(세상)가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 세계)
만유내재신론 (Pan-en-theism): "만물(Pan)이 하나님 안(en)에 있다"는 뜻입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경험과 생명 안에 포함되어 존재합니다. 마치 내 몸의 세포들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세계는 하나님 안에 있지만, 하나님은 세계(세포들의 합)보다 훨씬 더 크고 무한한 (주체)이십니다.
따라서 세상의 어떤 미물 하나가 고통을 당해도,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내면적 경험이 되어 하나님의 고통으로 직결됩니다.
4. 고전적 유신론과 과정 철학적 신관의 대조표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의 통찰은 아퀴나스와 등으로 이어져 온 고전적 유신론의 교리를 뿌리부터 뒤흔들었습니다.
| 구분 | 고전적 유신론 (Classical Theism) | 과정 신학/신고전적 유신론 (Process Theism) |
|---|---|---|
| 철학적 기초 |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 (Substance) |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 (Process, Event) |
| 하나님의 본질 | 고정불변 (Static), 순수 현실태 | 변화와 성장 (Dynamic), 끝없는 과정 |
| 권력의 방식 | 억압적 전능성 (Coercive Power) - 독재자 | 설득적 사랑 (Persuasive Power) - 동반자 |
|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 | 분리된 창조주와 피조물 (외부의 조종자) | 만유내재신론 (Panentheism) - 세계가 신 안에 있음 |
| 하나님의 경험 | 무감정성 (Apathy), 피조물에 의해 영향받지 않음 | 이중극적 신론 - 피조물의 고통을 내면화하며 함께 슬퍼함 |
| 미래와 예지 | 모든 미래의 세부 사항까지 결정되어 있고 아심 | 미래는 열려 있는 가능성들의 총합 (자유의지 극대화) |
핵심 요약
- 실체에서 과정으로: 화이트헤드는 우주를 변하지 않는 물질(실체)이 아니라, 매 순간 과거를 흡수하여 미래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사건들의 연속(현실적 계기의 파악 과정)으로 재정의했습니다.
- 하나님의 두 본성: 하나님은 세상 밖에 있는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우주적 과정에 함께 참여하십니다. 원초적 본성을 통해 세상에 최선의 '가능성(유혹)'을 제시하시고, 결과적 본성을 통해 피조물의 성취와 고통을 당신의 '경험'으로 내면화하십니다.
- 하트숀의 이중극적 신론: 하트숀은 하나님의 성품(사랑)은 절대적으로 '불변'하지만, 세상을 향한 구체적인 감정과 지식은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변화'한다는 이중극적 신관을 정립했습니다. 이로써 무감각한 돌덩이 같은 신의 이미지를 파기하고 살아 움직이는 사랑의 신을 복원했습니다.
- 만유내재신론과 설득적 권력: 세상은 하나님 안에 존재하며(만유내재신론), 하나님은 세상의 악을 폭력(강제적 전능성)으로 제압하시는 분이 아니라, 끝없는 사랑의 유혹(설득적 권력)으로 피조물 스스로 선을 선택하도록 이끄시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위대한 동반자입니다.
- 결론적 의의: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의 철학적 작업은 현대 신학이 '고통 문제(신정론)'와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를 새롭게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혁명적인 철학적 무기를 제공했습니다. 이 철학적 토대 위에서 기독교 과정 신학(존 콥)과 개방 신학(클락 피녹)이 본격적으로 만개하게 됩니다.
스스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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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및 토론
- 과정 철학은 하나님이 세상을 폭력이나 기적으로 강제(Coercion)하지 않으시고, 항상 최선의 목적을 향해 부드럽게 '설득(Persuasion)'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인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이러한 '설득적 사랑'의 모델은, 전통 교리가 주장해 온 하나님의 '전능성(모든 것을 마음대로 통제하심)' 교리와 충돌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이 강제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설득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하트숀의 '이중극적 신론'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적인 기쁨과 슬픔, 심지어 우리의 선한 결정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경험 속으로 흡수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변화'시킵니다. "내가 하나님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 교리는 우리의 일상과 예배에 어떤 역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 전통 신학(고전적 유신론)은 하나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그분이 절대 변하지 않고(불변성) 인간의 슬픔에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고(무감정성) 가르쳐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관이 현대 사회의 참혹한 비극(전쟁, 재난, 범죄) 앞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목회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논의해 보십시오.